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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왜 나빠요? #9 현실의 벽을 느낀 뒤 호텔 아르바이트와 병행할 새로운 알바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컴퓨터 가게에서 AS 전문 수리 기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부산 초량의 한 매장이었는데 10평 남짓한 작은 규모였고 직원은 3명이나 있었다. 한 분은 사장님, 한 분은 영업 전문, 마지막 한 분이 AS 전문 기사였는데 AS 기사가 부족하다고 하셨다. 주요 업무는 컴퓨터 조립 및 AS였다. 조립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차차 배우면서 하면 된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보다 몇 살 많은 선배 기사님의 실력을 어깨 너머 배우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웬만한 조립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AS 기술도 습득해 어려운 난이도의 조립과 수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배운 건 조립 및 ..
게임이 왜 나빠요? #8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지인의 소개로 해운대 유명 호텔 사우나에서 단순 노동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사우나 오는 손님의 신발을 정리하고 그들이 쓰고 간 여러 흔적들을 치우고 가끔 사우나에서 식사를 드시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온탕, 냉탕, 습식 사우나의 온도를 체크하고 등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새벽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것 빼고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특히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최고였다. 거의 하루종일 일만 하다 보니 돈 쓸 시간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이 제법 모였다. 호텔에 오는 손님의 대부분은 투숙객이거나 인근에 거주하는 돈 많은 부유층이었다. 목욕탕 대신 비싼 호텔 사우나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부유층이라..
게임이 왜 나빠요? #7 대학생이 되면서 여러 부분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하루 이틀 정도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아도 됐었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평소 가보고 싶은 서울의 용산을 당일치기가 아닌 몇 날 며칠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였다. 몸담고 있는 환상동에서 정기적 오프라인 모임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못가거나 가더라도 하루정도 있다가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앞면을 튼 다른 회원들과 좀 더 오랜 유대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미성년자의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그때는 달랐다. 비교적 먼 거리이지만 참여하려고 애를 썼고 그 결과 환상동의 실질적 유저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유독 친하게 지낸 몇몇 유저의 집에서..
게임이 왜 나빠요? #6 동아리의 꽃은 축제라고 했던가. 고2가 주축이 되는 학교 축제가 12월에 열릴 예정이었다. 지금의 고등학교 축제와는 다른 인근의 다른 학교 학생들이 마음껏 방문하고 구경하고 같이 즐기는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였다. 특히 인근의 여고에서도 방문하니 남고 학생들에게 학교 축제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동아리실을 어떻게 꾸미고 어떤 콘텐츠로 그들을 사로잡을 것인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여 각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보여주기로 했다. '컴퓨터라는 신문물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콘셉트였다. 그렇게 게임, 음악, 그래픽, 프로그래밍이라는 파트가 만들어졌고 12명의 부원들에게 각 파트를 배정해 주고 동아리 부장과 부부장 그리고 총무는 동아리실 밖에서 홍보를 맡았다. 완..
게임이 왜 나빠요? #5 환상동에서 활동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전체 게시판에 위치한 게임 게시판에서도 동시에 활동을 전개했다. 주로 게임 관련 리뷰나 해외잡지에서 본 게이머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번역해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천리안 아이디는 buzz423이었는데 게이머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싶어서 아이디를 GAMES라고 바꾸기도 했다. 아이디부터 "나는 게이머다"라는 걸 보여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일주일에 꼬박꼬박 글을 한 개 이상의 글을 게시하고 질문글이 올라오면 아는 범위에서 답변도 달아주고 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노출시켰다. 그 결과 게임 게시판 조회수 top5에 들어가는 게시글에 선정되기도 하며 더불어 게임게시판의 우수 활동 유저로 뽑혀 간혹 게임 신작 패키지를 제공받기도 했다. 이런 일이 너무 재밌었다. 활동..
게임이 왜 나빠요? #4 마치 무전기에서 나오는 잡음소리 같은 것이 길게 이어진 뒤 화면에 케텔의 첫 화면이 떴다. 지난날 한국통신 로비에서만 보던 화면이 내 방에서 짠하고 등장한 것이다. 감동이었다. 매일매일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올린 글을 모니터링하면서 피드백을 이어나갔으며 어쩌다 올린 글의 조회수가 많으면 날아오를 듯 좋았다. 그렇게 한 달 뒤 갑자기 부모님의 불호령이 있었다. 세상에 전화비가 너무 많이 나와버린 것이다. 매달 1~2만 원 정도로 나오던 전화비가 한 달 만에 8만 원 가까이 나온 것이다. 단말기가 집안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과 공부는 뒷전이고 PC통신에 전념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부모님이 모르실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기계에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다. 이 사태의 책임이 나에게..
게임이 왜 나빠요? #쉬어가는 페이지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탈고과정 없이 온라인 상태로 쓰는 글이라 기억이 뒤죽박죽입니다. 때문에 PC통신에 대한 연역과 저의 어린 시절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고 "그땐 그게 없었다. 그땐 그게 아니다" 등등의 댓글에 대해 감사히 여기겠으나 일일이 반응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이 왜 나빠요? #3 한국통신(현 KT)의 PC통신의 이름은 KETEL(케텔)이었다. 이름이 코털과 유사해서 자신이 사용하는 PC통신을 조롱하는 의미로 개털이라 불렀다가 이름을 KORTEL이라고 부르면서 다시 코털이라고 불렸다. (PC통신 시장이 끝날 무렵엔 HITEL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3대 PC통신이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케텔 그리고 유니텔, 천리안이 있었다. 유니텔과 천리안도 이름을 몇 번 바꿔 종시엔 어떤 이름을 썼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당시엔 다 기억하고 있었지만 ㅠ) 그렇게 케텔에 아이디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됐다. 본격적이라고 해봤자 시간 날 때마다 한국통신 1층 로비에서 하는게 전부였지만. 게시판에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채팅도 하면서 온라인이라는 세상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