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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왜 나빠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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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을 느낀 뒤 호텔 아르바이트와 병행할 새로운 알바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컴퓨터 가게에서 AS 전문 수리 기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부산 초량의 한 매장이었는데 10평 남짓한 작은 규모였고 직원은 3명이나 있었다. 한 분은 사장님, 한 분은 영업 전문, 마지막 한 분이 AS 전문 기사였는데 AS 기사가 부족하다고 하셨다. 주요 업무는 컴퓨터 조립 및 AS였다. 조립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차차 배우면서 하면 된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보다 몇 살 많은 선배 기사님의 실력을 어깨 너머 배우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웬만한 조립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AS 기술도 습득해 어려운 난이도의 조립과 수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배운 건 조립 및 수리만이 아니었다. 당시 불법복제가 당연했던 시절이라 게임, 영화, 유틸리티 등의 CD를 복제해서 팔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복제를 많이 하면 할 수록 그게 다 돈이 되었던 때였다. 원본 CD 하나로 여러 장의 복제 CD를 만드는 기술과 하드웨어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먹었다. 골방에서 그들이 찍어낸 불법 CD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을 보며 복제 CD 업자의 실태를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돈이 되는 건 다 한다는 그들의 마인드를 보고 젊은 시절의 나는 차마 그들과 깊게 친해지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순수했거나 순진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체 컴퓨터 매장에서의 일도 차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를 유발했고 컴퓨터 매장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부터는 어쩌다 한 번씩 가는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발 빠르게 변하는 컴퓨터 시장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그 자체가 틀린 행동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한 몫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그때의 선택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현명한 선택을 할 자신은 없다. 

 

호텔 아르바이트를 1년 넘게한 뒤 통장 잔고는 제법 많은 돈이 쌓여있었다. 600만 원 남짓되는 돈으로 PCS를 개통하고 최고급 컴퓨터를 맞추고 주변기기도 호화스럽게 장만했다. 아마 그때부터 최고 사양이 아니면 낫지 않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최고의 시스템이 갖춰 줬으니 이제 게임만 실컷 즐기면 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땐 PC게임보다 게임기게임이 본격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남은 돈으로 PS1을 샀다. 게임 CD도 많이 사 모았다. 그렇게 사 모으다 보니 한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겼다. 쏟아지는 게임의 파도 속에서 특정 게임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것 조금 하다가 다시 저것 조금 하고 그러다 식상하면 또 새로운 게임을 찾고, 사고... 그렇다 게이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게임 불감증'에 걸려버린 것이다. 

 

돈만 있으면 이것저것 사서 다 해봐야지 했던 열정은 오히려 돈 때문에 식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더 이상 게임은 즐겁지 않았다. 짧은 즐거움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철부지 어린아이가 더 이상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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